흥부와 놀부 이야기는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읽었습니다. 그 뒤 판소리와 만화 등으로 수없이 변주되어 온 우리 민족의 이야기입니다. 제 마음속에도 생생한 서사로 살아 있습니다.
어느 날 인공지능을 켜고 흥부와 놀부의 한 장면을 그려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순식간에 첫 그림이 탄생했습니다.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며 다음에는 어떤 장면이 이어지면 좋을지 물었습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다음 장면을 그려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림이 십여 장쯤 모이면 파워포인트에 차례로 늘어놓고, 그 사이를 이어 줄 이야기를 생각했습니다. 그림의 뒤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이 책이 태어났습니다.
처음에는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질지 저도 인공지능도 알지 못했습니다. 제 아이디어를 받아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고, 저는 그 그림을 바라보며 다음 장면을 상상했습니다. 이런 상호작용이 이어지며 이야기가 자라났습니다. 어떤 장면 앞에서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한참을 들여다보기도 했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자라 박과 함께한 추억이 많습니다. 부모님은 구덩이를 파고 박씨를 심으셨습니다. 그러면 박넝쿨이 지붕까지 올라가 하얀 꽃을 피웠습니다. 가을이 되면 초가지붕에 보름달 같은 박들이 주렁주렁 매달렸습니다. 아버지는 박을 톱으로 켜셨고, 어머니는 그 속을 나물로 무치셨습니다.
시골에서 박은 쓰임새가 참 많았습니다. 쓰다가 깨진 바가지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것으로 쪽배를 만들어 물가에 띄우며 놀았습니다. 이 책의 많은 장면에는 제 어린 시절 경험이 녹아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쓰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흥부전은 어떤 모습일까요?
인공지능 그림책 작가 이영식은 신학과 교육학, 상담학을 공부했다. 독서치료와 글쓰기 현장에서 사람들과 수백 권의 그림책을 함께 읽으며, 글과 그림이 서로 이야기를 건네는 방식과 여백이 상상을 불러오는 힘을 배웠다. 그림책 속 한 장면이 오래된 기억과 감정을 깨우는 순간도 함께 경험했다.
그의 창작은 그림을 들여다보며 다음 이야기를 찾는 데서 시작된다. 장면을 구상해 인공지능에게 그림을 요청하고, 완성된 그림에서 다음 장면을 발견한다. 인물의 표정과 몸짓, 공간과 소품을 살피고 문장을 고치며 글과 그림을 함께 엮는다. 독서와 상담 경험은 이야기의 방향을 잡아 주고, 인공지능과의 대화는 새로운 표현의 문을 연다.
책으로 세상을 넓혀 간 삶을 담은 『섬소년 책날개를 달고 날다』, 서로 돕는 삶을 그린 『신 거북이와 토끼전』,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생명들의 이야기를 담은 『개구리 연못의 노래』 등을 지었다. 『거울왕국 이야기』에서는 익숙한 백설공주 서사를 새롭게 펼쳐, 왕비가 어린 자신을 만나고 다른 사람을 품어 가는 과정을 그렸다.
어린이는 이야기 속에서 마음껏 놀고, 어른은 그 안에서 자기 삶을 새롭게 발견하는 그림책을 쓰고자 한다.